가을 강 (반포 세빛섬에서)

by 김용민 posted Oct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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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바람이 제법 소슬해지고 강둑에 억새풀도 하얗게 머리가 세었다

          가을은 칼로 치듯이 온다고 했던가

          계절과 계절 사이에는 작은 틈새가 있어 여름들이 조용히 그 틈새를 바람처럼 빠져 나가고

          있었지만 나는 시간이 지나가며 만든 흔적만 보았나 보다

          내 몸 안으로 수없이 많은 시간이 지나갈 때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다가 오늘처럼 억새

          풀을 보면서 새삼 계절이 바뀌었음을 느끼고 있으니....





          오랜 세월 강을 찾아다녔더니 이젠 강가에 서면 강이 나를 찾아온다

          강물이 내 몸 안에 들어와 핏줄처럼 돌아 나가면 내 몸은 어느새 파랗게 강물이 든다

          시간도 강물처럼 날마다 내 몸 안으로 들어 와 계절이 되고 삶이 되어 나와 함께 흘러가지

          만 나는 늘 나를 세월만 흘러가는 줄 알고 세월 탓만 하고있다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가고 싶은 것은 인간의 자기 분열일 뿐 시간 속에는 오직 흐름만 있을 뿐인데도 말이다





          양수리 강물에 비치는 산은 높고 우뚝 했는데 도시에서 보는 강은 멀고 아득하다

          유연하고 완만하지만 굽이치지 못하고 여울지지도 못 한다

          카메라에 마음을 빼앗기면 세상이 원근법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망원렌즈로 보면 먼 산과 가까운 산이 뷰파인더 안에 납작하게 붙어 보이고 모양이 단순

          해지면서 거리감도 없어지고 밝은 빛과 어두운 빛만 보인다





         오늘은 아침은 바람이 잔잔해서 물속에 비치는 세빛섬 반영이 아름답다

         강물이 제 몸 안에 있던 빛깔 들을 토해 내면서 일렁인다

         빛 그림자가 뒤엉키며 만들어 놓는 무늬들이 잘 그려진 한 폭 추상화 같다

         페인트 통을 들어부은 것처럼 화려하고 현란하기도하고 깊고 싶은 심연에서 끌어 올린

         골동품처럼 은은해지기도 하다





          빛 속으로 들어갈수록 빛은 더 멀리 물러간다

         새롭게 생겨난 빛들에 밀려 그대로 무너져 가는가 싶던 먼저 빛깔들도 서로 어울려

         새롭게 자리 매김을 하고나더니 끌어안으면서 함께 흘러간다.

         우리의 삶이 늘 새롭고 낯설 듯 포개지고 또 헤어지면서 흘러간다

         시간은 지금도 변함없이 흐르건만 사람들의 마음 갈피 속의 계절만 푸르렀다가 붉게 물들

         었다가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돌배나무 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