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책은 나의 중요한 일과 중에 하나입니다
틈만 나면 집에서 가까운 남산을 오르거나 한강에 나가 강을 따라 걷습니다
목적 없이 무작정 걷는 것이기에 주변에서 보기에 게으름이나 빈둥거림과 잘 구별되지 않지만
그러나 산책은 아슬아슬한 내 불안한 삶의 여정에 정신적 이완과 휴식을 주는 유일한 육체
활동이며 뜻대로 안 되는 세상사에 대한 태업이며 저항이기도 합니다
엊그제는 청계천을 따라 걸었습니다
1호선 동묘역에서 출발해서 답십리 한양대 서울숲을 거쳐 한남동까지 천천히 둘러오는데
얼추 4시간쯤 걸렸습니다
사람들은 청계천하면 광교를 기점으로 도심 안쪽을 생각 합니다만 오히려 청계천은 도심 밖의
변두리가 더 조용하고 경치가 좋습니다
특히 도심의 청계천변에 성벽처럼 둘러쳐있는 콘크리트 벽이 나는 답답하고 숨이 막힙니다
산책의 즐거움은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습니다
오늘의 길은 어제의 길과 다르듯이 매일처럼 걷는 산책길이라 하더라도 풍경은 시간에 따라
빛에 따라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다릅니다
갈대밭에서 느닷없는 인적에 놀란 철새가 푸드득 날아오릅니다
물속에 잠긴 버드나무 그림자가 때마침 부는 한줌 바람에 톱날처럼 갈라지고 건너편 산책로
따라 걸어가는 사람들의 노랗고 빨간 옷이 어우러져 청계천은 한 폭의 유화가 됩니다
벤치에 앉아 한 이십 분쯤 눈을 감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반수면 상태의 몽롱한 의식 안으로 신선한 기운이 몰려들어 옵니다
이것은 산책 중에 내 심령 안에 콜타르처럼 가라앉아 있는 삶의 불안한 기운을 몰아내는 나만
의 의식행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속도의 효율성에 중독되어 가고 있습니다
빠름은 남을 이길 수 있는 필수요건이며 성공의 지름길이 되었습니다
한가로움은 게으름이 되었고 느림은 이제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발붙일 곳이 없는 무능력의
징후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빠름은 간혹 현재를 지나쳐서 놓쳐버리게 합니다
자연, 인간, 우리, 나, 전통, 풍습, 등 너무나 많은 것들이 속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산책은 숨 가쁘게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혼자가 되어 보는 시간입니다
그리하여 내 자신의 내면을 고요하게 만들고 내가 만들어 온 수많은 나이테를 되집어 헤어
보는 시간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현재를 사는 것”이라는 말을 기억 하면서....
마치 제가 산책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아주 평온해 지네요.
이렇게 오래 많은 시간을 살아왔으면서도
왜 아직도 잘 산다는게 몹시 어려운 일인지?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유지하며 산다는게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후후후... 공부도 안한 학생이 왜 시험문제가 이렇게 어려운건지
의문을 갖는것과 똑 같겠죠?
정말루 공부 많~이 한티가 나는 용민씨의 작품을 자꾸 보고 있으면
제 내면도 덩달아 한 등급 올라가는 듯 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