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여행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바빴던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며
아주 오랫만에
가슴은 Free, 마음은 커다란 날개 달고 두둥실 ~~~
일본여행이 끝난 후 여행일정을 따라 가다 보니
우리는 가나자와에서 낭만이 흐르는 가을 음악회를 연주하고 온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서명원이라는 지휘자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지휘자였다.
3박4일 여행 동안 버스, 기차, 택시 등 각종 대중교통은 다 이용해본 셈인데
그는 19명의 연주자가 각자 자기의 몫을 다하도록 철저히 준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제전화를 50번 이상 했다는 말을 들으며
연습만이 살 길이라는 공연계의 좌우명이 생각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게다.
수석바이올리니스트 해진씨는 지도만 보면 가 본 사람보다도 더 정확하게 길을 찾는 인간네비였다.
그가 지휘자의 철저한 오른팔로 봉사해 주었기에
우리들은 삑사리 안 내고 감동적인 연주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머지 현악기군, 목관악기군, 금관악기군, 타악기군 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각자 자신들의 소리를 내려고 노력했고
노력한 만큼 멋진 연주를 우리는 해냈다.
여행은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휘자를 아주 잘 만난 셈이다.
명원씨는 나를 포함 몇몇 무식한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알게 해 주고 보게 해 주고 느끼게 해 주었다.
고마쯔라는 작은 공항에서부터 일본에서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항상 일본에 오면 느끼는 감정인데 뭔가 정돈된 느낌이 우리의 청결함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정갈함이랄까 자기들 몫은 분명하게 해두는 철저함같은 게 느껴지는 건 나만의 후각일지도 모르겠다.
정쟁의 와중에서 생명이 초개처럼 사라져야했던 역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치의 방향을 문화 쪽으로 틀었다는 가나자와 지도자들의 안목을 높이 사고 싶다.
그 덕분에 당시에는 많은 생명도 구했을 테고
후손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첫번째 관광코스, 야스에 금박공예관도 그 중 하나로 야스에라는 장인의 개인박물관이다.
금을 두드리고 두드려서 아주 얇은 박으로 만들어
건축물과 미술작품등에 장식했다고 한다.
금이 주는 그윽함과 신비함을 살린 작품들을 보면서
금이라는 소재를 재화로 쓰기 전에
갖가지 예술품의 경지로 승화시킨 장인들의 땀방울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히가시 차야가의 거리, 남자들이 게이샤를 찾던 곳.
샤미센을 뜯는 게이샤의 흰 목덜미가 클로즈업되면서 참 많은 여자들의 삶이 신산했으리라 여겨진다.
일부 우리 남동문들은 그 시대에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을까?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다.
우메노하시 나무다리 건너 말하자면 고급요정가 자즈에마치 차야가거리.
고급유곽답게 정갈한 거리에 깨끗한 2층집들이 개천따라 있느데 지금도 영업중이란다.
흰 벚꽃이 흩날리는 창가에서 여자를 앞에 두고 술잔을 기우리는 고급 사무라이들의 모습.
어쩌면 선택된 그들의 순간은 천상에 있는 기분이었을 것 같다.
다음 생에는 카사노바로 태어나볼까? ㅎㅎㅎ
회원제로 운영된다고 하니 돈 있다고 아무나 가는 곳은 아니라네.
떠날 때부터 가이드가 은밀한 곳에 데려가준다고 약속했다고 좋아했던 ooo씨,
누구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쯔쯔쯔
농담입니다.
가을이 살큼 내려앉은 겐로꾸엔 정원.
파란 하늘과 아름다운 조경이 어우러진 야수파 유화 속에 들어앉은 우리 친구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 정말 실감이 난다.
일본의 城은 비슷비슷하니까
봤던 사람은 대충 봐도 된다는 명원씨 말에 수긍하면서도 운동삼아 들어간 가나자와 성.
城 한 쪽, 관광성 홍보 시화전에
기모노를 입고 안내하는 너무나 예쁜 도우미 아가씨를 만난 것으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듯 싶다.
젊다는 것 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우리를 홀리고 있었는데 미모까지 갖췄으니....
이번엔 고속버스를 타고
시라가와고 합장취락으로 이동.
유명한 관광지답게 여태까지와는 달리 많은 인파를 만났다.
겐로꾸엔보다는 조금 더 깊어진 가을 속에 자리잡은 산 속 마을은 마치 동화 속 풍경이다.
금방이라도 수세기전 일본의 농부들이 뛰어나와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하지만 많은 젊은이들은 이 곳에서 꿈을 꾸며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갔겠지 하는 생각을 잠시 하는 순간
두텁게 얹은 짚지붕이나 그들을 엮어매놓은 밧줄들에서 일본인들의 철저함이 또 눈에 보인다.
그들은 우리들 민속마을처럼
그 곳에서 살면서 집을 개방하거나 찻집을 운영하거나 나름대로 살아간단다.
그리고 입에서 살살 녹던 일본소고기 와규.
은밀한 밤, 또르르또르르 물길따라 조잘조잘 얘기꽃 피우며 걷던 일본의 뒷 골목.
아주 이쁜 샤케집에서의 정종 한 잔 ( 일부 남동문들만 갔음. ㅠㅠ)
우리들의 교향곡은 클라이막스로 치닫고 있었다.
생각이 참 참신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