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끼 내려앉은 검은 다리의 음울함과 끊어질 듯 이어지는 냇물 소리 위에 눈가루처럼 떨어
져있는 나뭇잎이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숲길을 걸으면서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 아니라 바람이
그 풍경위에 흩뿌려 놓는 소리 탓이라 생각 합니다
바람 따라 걷노라면 산산히 부서져 파편처럼 되어버린 생각들이 하나둘씩 모여 듭니다
담벼락에 드리워진 소나무 그림자가 아름답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돌과 그 사이에 메워진 흙 그리고 그 위를 담장이 넝쿨이 기어갑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았음에도 자연과 모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다는 것
아닐지요
빛바랜 기와 골이 처마 아래로 흘러내리며 빚어놓은 아름다운 선율을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런지요
날렵한 허리선이며 부드러운 능선 구름사이로 순한 햇살마저 비쳐드는 정경은 나무랄 데 없이
비단 옷 곱게 차려입은 여인네의 자태 입니다
이 세상 아름다움 앞에 가슴 떨리지 않는 사람 누구 이겠습니까
기대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것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법
늙은 감나무 한그루가 떨어지지 않을 만큼 커다랗고 붉은 감을 별처럼 매달고 서 있습니다
이젠 몸도 굽어지고 가지조차 견디지 못하여 파이프 기둥에 의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수 백년이 넘도록 법당 앞에서 묵언정좌를 한 탓인지 고고한 기품이 서려있습니다
나의 마음을 내려다보고 있는 감나무 가지 끝을 스치는 한 점 바람이고 싶으며
숫자를 헤아릴 수없이 많은 붉은 감 중에 한 알로 매달려 있고 싶으며
외로울 때마다 삶이 시들해 견딜 수 없을 때마다 강이며 산이며 찾아가 걷습니다
오늘도 길을 걸으며 생각합니다
길이란 반드시 눈에 보이는 형이상학적인 길만은 아니라는 것
깊고 깊어 칠 흙 같은 질곡에서 벗어나는 길은 강에도 산에도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가슴 시리게 차가운 저 맑고 투명한 샘물처럼 덕지덕지 온 몸과 마음에 붙어있는 것들은
모두 바람에게 주어버리고 이제 부터라도 다시 주섬주섬 챙겨야 겠습니다
맑고 개끗해질수록 외로움이 깊어질테고 외로울수록 서러움이 자라겠지만.....
블로그에서 /사진 글 김용민
http://blog.paran.com/wildpear
참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