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을이 아직 하늘에 풀리기 전 공중에서 떨어지는 느리고 연한 빛을 받으며 천천히
저녁을 받아들이고 있는 경복궁, 밝고 투명했던 한낮의 풍경 위에 물감이 묻은 듯
가물가물한 어둠이 보태어져 시간의 배색을 만들어 가고 있다
멀리 화려한 빛을 뽐내던 팔작지붕 아래 단청들도 검은 빛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팔장을 끼고 걸어가는 연인들의 긴 그림자가 땅에 끌리며 묘한 쓸쓸함을 더해 준다
아주 먼 곳으로부터 와서 하루를 물들여 놓고 다시 먼 곳으로 가는 빛, 세상은 이렇게
하루하루 빛으로 길 들여져가는 것인지 모른다
일테면 계절의 끝에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푸르름 혹은 붉음 같은 얼룩들은
빛들이 뿜어대는 눈부심에서 오는 울렁증 같은 것
태양이 가을 잎을 붉게 물들여 놓은 것이 아니라 시간의 여정 위에서 나뭇잎이 저 혼자
싹을 틔우고 몸을 태우며 뜨거웠다가 제풀에 지쳐 사라졌던 것,
계절은 결코 매듭을 만든 적이 없는데 내 외로움이 스스로 끝과 시작을 만들어 놓고
자주 넘어뜨리고 멀미를 하게했던 것은 아닌지
여행이란 여기가 있어 저기로 가는 것
그러니까 이 가을에 겪는 나의 멀미는 시간의 여행 중에 겪는 시차 같은 것
마치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온 두 사람이 막 사랑을 시작 하려고 할 때 겪는 현기증처럼
나를 태운 기차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레일 위를 뜨겁게 달구며 달리고 있는
지독한 동화 속의 여행이었으며,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무도 모르는 정거장에 나 혼자 남겨 질 것처럼
아득했으며, 나는 이별 없는 시간 위에 살고 싶었으며.......
블로그에서
날 반겨 준 모든 친구들! 미안해요. 사랑해요. 고마워요. 축복합니다
미. 사. 고. 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