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가 사는 법
김 용 민
담쟁이 이파리가 가을볕에 그을려 빨갛다
푸른 하늘이 푸른색만을 빨아내는 알 수없는 표면장력
바람이 지날 때마다 초록빛 발음기호들이
연기처럼 허공에 풀어진다
내 푸른 세월도 그렇게 지워져왔으니
붙들고 매달리는 것이 삶이라지만
어쩌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허물어진 담벼락 끝에
매달려있게 되었는지.
점자 짚어가듯 반년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더듬어왔지만
돌아보면 밤이슬 축축이 묻어나는 그 때 그 자리다
발목 붙들려 움직이지 못하는 선홍색 잎 새 위에서
투명한 바람이 몸을 까불 때마다
순장무덤처럼 한 줄로 누워 있다가 번득이며 일어선다
언뜻 드러나는 빨갛게 피멍든 손끝하며
서로 깍지 끼고 있는 긴 행렬 끝
까마득하게 앞서나간 저 잎 새는 어떻게 되돌아오려 하는지
사랑은 한번 멀어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지만
계절은 떠나는 이별이 아니다
비워줌으로서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나는 목숨의 길
가을 담쟁이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낙엽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블로그21
2011.10.09 12:02
담쟁이가 사는 법 / 회갑 축하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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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의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