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수같이 쏟아지던 장대비는 잠시 멎었지만 잔뜩 웅크리고 있는 먹구름은 심상치 않은 내 마음입니다
문득 어느 비오는 날 아침 인적하나 없는 세미원 연못가를 거닐던 일을 생각합니다
그 때 비이슬 잔뜩 머금고 바라보던 연꽃 송이의 붉은 시선이 눈에 아슴합니다
대충 카메라 가방을 챙겨 전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지난겨울에 와보고 오랜만에 다시 찾은 세미원입니다
넓은 강가에는 다시 또 서붓서붓 비가 내리고 연잎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요란 하고
건들바람에 실려와 이마를 때리는 빗방울이 더 없이 시원합니다
아직 연꽃이 피기는 이른지 드믄드믄 붉은 연꽃송이들이 아쉬움처럼 올라 옵니다
우산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넙적한 연잎에 고여 있는 빗방울들이 수정처럼 빛납니다
누가 그랬다지요. 영롱한 빗방울이 하늘로 올라가 밤하늘의 별이 된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어서 더욱 귀하게 여겨지는 것들 , 다름 아닌 자연이 스스로
아우러 놓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선물입니다
유명 관광지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자연이란 이미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요
아름답지 않고 볼 것 없다는 선입견은 우리 눈을 그저 흘깃흘깃 스쳐버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요
가끔은 이렇게 몸도 잊고 마음도 잊은 채 내가 나를 걸어 만나는 나, 하지만
나는 아직도 본래 나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누구나 잃어버린 자신을 찾겠다고 유행어처럼 말하지만 잃어버렸다는 것은 본래 있던
것을 상실했다는 의미인데 언제 자신의 모습을 본 적이나 있다는 것인지요
어느새 비는 멎고 고즈넉하여 깊고 깊은 생각을 밟고 걸을 수 있는 연밭 길,
한참을 이렇게 걷노라면 잘게 부수어진 나의 마음을 연꽃처럼 크고 둥글게 빚어 줍니다
언제 노을이 물든 저녁 연꽃이 노을처럼 붉게 물든 날 다시 한 번 와야겠다 생각하며
연밭을 돌아 나옵니다

가끔은 친구들이 묻습니다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무엇을 보느냐고 말입니다
아마 비싼 카메라를 가지고 아름다운 것을 찾아다니는 품새가 호사인 듯싶던 게지요
친구에게 말합니다
보는 것도 잊은 듯 듣는 것도 잊은 듯 그냥 걸을 뿐인데 무엇을 보았겠느냐고
다만 급하지 않게 다니다보면 어디선가 불쑥 만나지는 인연들
그 것이 꽃이든 생각이든 사람이든 어떻겠느냐고.........
김용민 http://blog.paran.com/wildpear
작품사진들이 정말 멋집니다.
그리고,
연꽃들은 볼 때마다 신기하고 신비롭습니다.
어쩌면 물 속에서 저런 아름다운 것들이 올라오는지요?
보노라면,
가슴이 뭉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