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빗방울 증후근
파도는 바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열려진 창문으로 거품 물고 달려드는
빗줄기
가슴 복판에서 파닥거리는 멸치 떼처럼
충격을 견디지 못해 펄쩍 펄쩍 튀어 오르는
하얀 속살들의 아우성,
격렬하던 몸짓이 빠져나가자
방충망 격자 그물에는 흰 곡선만 남았다
먼 길을 달려왔기 때문이리라
아득하고 아픈 기억일수록 생각의 그릇 속에
왈칵 엎질러지듯 쏟아지는 법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롭다
이른 새벽 소파에 쪼그려 앉아 생각하고는 했다
의지가 사라지게 되면
왜 동그랗게 몸이 말아지는지
한겹 한겹 투명한 껍질이 포개질 때마다
견디지 못한 표면장력이 가늘게 떨고
시선 끝에 부딪혀 화다닥 놀라는 물방울 하나
언제가 그 눈빛처럼 낯이 익다
그럴 수 없노라고 , 이럴 수는 없노라고
돌배나무 / 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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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말 )
살다가 갈 길을 잃어 허전하다 생각되면
창살에 매달린 빗방울을 보십시오
꿈을 쫒느라 분주했던 삶이 허망하게 느껴진다면
물이 되어 흘러내리는 빗물을 보십시오
그리고 빗물에 동행이 되어 머뭇거려 보십시오
가슴에 꼬깃꼬깃 접어두었던 덩어리들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테지만, 그래도 지워지지 않을 만킄 단단하다면
다시 거둬 넣어두는 수밖에요
가슴에 옹이 한 두 개쯤 품지 않은 나무 있을라구요